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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댁 in 미국 시골/유학생 와이프 일기

[유학생 와이프일기] 중국인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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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억 명의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 덕분에 미국 어디에서나 중국인을 만날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학생 아파트에도 매우 많은 중국 유학생, 교환 교수 그리고 그들의 가족을 만날 수 있다. 미국에 유학 중인 중국 가족은 다른 국적의 유학생 가족들과는 구성이 다르다. 보통 유학생 가족은 유학생과 배우자로 이루어져 있고, 아이가 있는 경우 한 두 명이 더해진다. 대부분 구성원이 단출하다. 하지만 중국 유학생 가족은 다르다. 기본 구성에 조부모가 함께 하는 것이다. 



중국은 부모가 자녀에게 매우 헌신적이다. 아들, 며느리가 학업이나 직장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미국까지 따라와 집안일을 해주고 아이들을 돌봐준다. 그래서 똑같이 미국 생활을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한국 가정의 경우 남편이 공부하고 부인이 집안 살림과 아이 키우기를 하는 반면 중국 가정은 부부가 함께 공부하고 일을 하기 때문에 나중에 보면 중국 가정이 훨씬 빨리 미국에 잘 정착하게 된다.




학생 아파트 단지 내에는 이렇게 자녀들을 지원하기 위해 오신 많은 중국 조부모님들을 만날 수 있다. 이 분들은 여름이면 커뮤니티 가든을 신청해 엄청 전문적으로 농사를 짓고, 날이 추우면 강당에 모여 장기를 두거나 태극권을 하고, 손주들과 산책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중국인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에 길을 걷다 보면 중국어로 말을 거는 할머니들을 매우 자주 만난다. 내가 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중국어 '띵부동(몰라요). 워 한궈(나 한국인).' 이렇게 대답하기도 하고, 못 알아들어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한다.



한국의 경우, 합가를 하게 되면 대개 며느리들이 심적으로 희생을 한다. 똑같은 맞벌이를 하지만 남편은 야근, 회식으로 늦게 들어와도 오케이. 반면, 며느리들은 6시 땡 하고 달려와 옷도 못 갈아입고 '어머니~ 고생 많으셨죠~♡'하며 동분서주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중국은 며느리의 파워가 세기 때문에 상황이 다르다. 상대적으로 한국에 비해 며느리 또는 딸에게 부모님들이 꼼짝 못 한다.



한 친한 한국 언니가 ESL 수업에서 만난 중국인 여교수와 친해졌다.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안식년을 온 이 교수에게 언니가 물었다. "근데 너는 어떻게 아이도 키우고, 일도 하고 다 하는 거야? 너무 대단하다~" 그러자 이 교수님 왈 "응. 우리 집에 현재 베이비시터가 있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며칠 후, 한국 언니는 이 교수님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았다. 집에 들어가자 언니는 너무나도 당혹스러웠다. 


예전에 말했던 그 입주 베이비시터가 바로 교수님의 시어머니였던 것. 시어머니는 식탁에 둘러앉은 언니와 교수님의 음식 시중을 들어주었다. 시어머니께서 서빙해주는 음식을 받아먹으려니 언니는 가시방석에라도 앉은 것 같이 불편했지만, 오히려 며느리였던 교수님은 편안하게 식사를 즐겼다고 했다.



"아쟁 할아버지와 가족들"


우리 집 윗집에는 내가 '아쟁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할아버지와 그분의 가족들이 살고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미국으로 안식년을 온 교수 딸과 함께 살며 손주를 돌봐주고 집안일을 해준다. 처음에는 이 가족에게 여러 불만이 많았지만, 지금은 참 좋은 이웃으로 지내고 있다.



3대가 한 집에 모여 살다 보니 중국인 가정들은 아파트에서 권고하는 인원수를 초과해서 살기 마련이다. 내가 살고 있는 조그마한 2 베드룸 아파트는 아파트 규정 상 4명까지 살 수 있다. (물론 누가 검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옆 집에 살았던 중국 가족은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초등학생 자녀 1, 유치원생 자녀 1, 아기 1) 이렇게 무려 7명이나 살았다. 워낙 벽간 소음과 층간소음에 취약한 낡은 목조 건물이기 때문에 옆 집에서 나누는 대화나 아기의 울음소리를 늘 듣게 되는데, 중국어의 특성상 왠지 이 중국 부부는 늘 싸우는 것만 같고...... 아이들은 늘 혼나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다.



우리 옆 집에 살던 중국 가정이 이사를 가면서 조금 평안한 저녁 시간을 보내나 했는데, 바로 우리 윗집에 다른 중국 가정이 이사를 왔다. 역시나 다를까 그 집 남자아이는 매일 계단을 뛰어다니고, 집 앞에서는 떼를 쓰며 울부짖었다. 거기에다 할아버지는 하루에 3번, 매일 30분씩 아쟁 비슷하게 생긴 중국 전통악기와 바이올린 연주를 했다. 썩 잘하는 연주는 아니었고 언제나 한 연습곡을 30분 동안 연주했기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올라가 항의를 하고 싶었지만, 때마침 우리 집에는 2시간 간격으로 밤새 울어재끼는 신생아가 있어 남 말할 처지가 못되어 그냥 꾹 참았다. 또한 집에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어차피 영어를 전혀 못하시고 말이다.




하지만 아기가 어느 정도 크고 밖에 왔다 갔다 하면서 윗집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부딪힐 일이 생겼고 점점 좋은 인상을 갖게 되었다. 언어의 소통이 전혀 안되지만 할아버지는 항상 유모차를 끈 내가 편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현관문을 잡고 기다려주시며 배려해주었다. 할머니는 성격이 보다 적극적이셨는데, 아기가 몇 개월이냐, 모유수유를 하느냐, 산책 나가느냐 등을 바디랭귀지로 물어보실 정도였다. 집 밖에서 우연히 만나면 다른 중국 할머니들한테 우리 아랫집에 사는 아기라며 자랑스럽게 소개하시기도 하고, 참 예뻐해 주신다. 한국에서 살았다면, 분명 이웃집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와 우리 아기에게 이렇게 대해주었겠지~ 하는 마음도 든다. 



누군가 항의를 한 모양인지 요즘 집에서 아쟁 할아버지의 연주를 듣기 힘들어졌다. 대신 종종 집 앞 벤치나 커뮤니티 센터 강당에서 연습하는 모습을 본다. 그래서 윗집 남자아이마저 조용하다 보면 '어라? 윗집이 이사를 갔나, 이상하게 조용하네?'하는 마음도 든다.



다양한 국적과 인종이 모여사는 학생 아파트. 여러 국적의 사람들을 겪다 보면 아무래도 00 나라 사람들은 이렇더라~ 00 문화권 사람들은 저렇더라~하는 나름의 선입견을 가지고 살게 된다. 하지만 언어나 문화의 장벽을 넘어서 서로 인간다운 면모를 느끼고 교류할 수 있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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