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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댁 in 미국 시골/유학생 와이프 일기

[유학생 와이프 일기] 극한 여행 (ft.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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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 와이프들은 과연 무엇을 하며 지낼까? 박사나 포닥 남편을 따라 미국에 온 와이프들은 부부 중 한 명이 영주권자가 아닌 이상, 비자의 제한이 있고 또 한 지역에 짧게 머물다 떠나기 때문에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대개 무료한 삶을 보내기 마련이며 한국에서는 학업이나 직장일 등 끊임없이 배우고 성취하는 삶을 살다가 하루아침에 살림만 해야 하는 처지가 되니 대부분 초반에 많이 힘들어한다. 더군다나 소중한 가족들, 친척들, 가족들과도 떨어져 버리니 나는 누구인가?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 하는 고민도 든다.


외로운 타국의 생활에 큰 활력이 되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계획을 세우고, 여행을 다녀오면 밀린 집안일도 하고 사진도 정리하고 또 다음 여행을 계획하면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주야장천 학생 아파트에 살면서 살림만 하다가 여행을 한 번 다녀오게 되면 앞뒤로 시간이 참 잘 간다. '내가 한국에서 내 커리어, 내 친구들, 가족들, 직장 다 버려두고 여기서 뭐 하는 거야'라는 생각을 잊게 된다. 대신 '미국에 있으니 이렇게 여행도 다니고 신난다~'라는 마인트 컨트롤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건강한 정신을 위해서 나는 하다못해 옆 주라도 가끔 다녀온다.


한국에서 미국까지 여행하러 오는 것 보다야 수월하겠지만, 사실 미국 안에서 움직이는 며칠의 시간조차 학기 중이나 방학 구분 없이 연구를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빠듯한 주머니 사정에 여행을 다니려면 이런저런 불편함도 많이 감수해야 한다. 남편과 나는 이런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며(?) 여행을 다녔는데 모든 여행이 다 고되고 힘들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보다 여유 있게 일정을 세우고 3성급 이상의 호텔에서만 묵었지만, 한 명은 운전을 하고 한 명은 뒷좌석에서 아기 돌보기를 하며 움직여야 했으니 여전히 고되기는 마찬가지이다. 


지금까지의 여행 중, 가장 고됬던 여행을 꼽아보았다. 극한 여행 1위부터 3위까지.



극한 여행 1위. 왕복 24시간 운전해서 가는 나이아가라 폭포.



지금까지 남편과 다녀온 곳 중, 가장 힘들었던 여행지는 바로 캐나다 나이아가라 폭포이다. 물론 비행기를 타고 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근처 공항(편도 3시간)까지 가서 수속을 밟고 또 캐나다 공항에 도착해 다시 렌트를 해야 하기 때문에 운전하는 것이 더 용이했다. 친한 지인과 함께 셋이서 밤 8시에 출발했고, 12시간 정도를 달려 다음 날, 오전 10시 반 경 숙소에 도착했다. 밤새 달릴 때만 해도 즐거웠으나 동이 트면서 고비가 찾아왔다. 더 이상 수다를 떨 대화 소재도 떨어져 갔고, 포근한 햇살이 내리쬐니 잠이 살살 왔다. 북미의 뻥뚤린 고속도로를 일자로 쭉 달리다 보면 긴장감이 떨어져 졸음운전을 하기 쉽다. 정말 극한의 정신력으로 마음을 다잡으며 어찌어찌 호텔까지 도착했다.



캐나다에 간 김에 토론토로 이민간 동생을 만났는데, "언니 여기까지 운전해서 왔어?"하며 매우 놀랬었다ㅋㅋㅋ





극한 여행 2위. 미친 물가의 뉴욕


내가 꼽고 싶은 2번째 극한 여행은 바로 뉴욕이다. 바로 숙소 때문에 2위로 선정되었다. 여행을 준비하다 보니 맨해튼의 호텔비는 상상을 초월할만큼 비쌌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맨해튼을 벗어난 곳에 주로 많은 한인 민박집에서 자면서 편도 40분 동안 지하철을 타고 아침저녁으로 맨해튼에 왔다 갔다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경우, 첫날에는 공항에서 민박집으로 가서 짐을 맡기고 다시 맨해튼으로 가서 관광하고 다시 저녁에 민박집으로 이동해야 했고, 마지막 날에는 아침에 민박집에서 맨해튼으로 가서 짧게 관광하고 다시 민박집으로 가서 짐을 찾고 다시 공항으로 가야만 했다. 며칠 되지도 않는 뉴욕에서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찌어찌 맨해튼 물가에 비하면 초 저렴한 호텔을 찾아 묵었다. 첼시 마켓 Chelseamarket, 휘트니 미술관 Whitney Museum, 하이 라인 High Line 근처여서 위치도 매우 좋은 편이었다. 단점이라면 룸 수준이 거의 고시원 방, 쪽방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공간이 너무 협소해 나의 화장품들은 자꾸 침대와 벽 사이로 떨어졌고, 캐리어를 펼치면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없어 꼭 필요한 물건만 꺼내 써야만 했다. 공용 화장실과 샤워실을 써야 했는데, 하루는 내가 안경을 세면대에 두고 온 일이 있었다. 안경 두고 왔으니 찾아달라고 첫날부터 말했지만 4번째 날 체크아웃하는 날까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한국에 있는 시동생이 내 안경을 새로 맞춰 항공 택배로 보내주는 걸로 마무리되었다.


또 한 가지 이 숙소의 문제점은 바로 우리 호텔 꼭대기에 매우 핫한 바가 있었던 것이다. 건물 전체로 쿵쿵쿵 울리는 비트 소리는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었지만, 할리 슨 오토바이가 허드슨 강가를 따라 부르릉 달리는 소리를 밤새 들어야만 했다. 이런 문제는 맨해튼 내에 있는 숙소에서는 다 경험한다고 했다. 밤에는 조용히 푹 자고 싶으면 이동하는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아예 외곽으로 나가는 것이 나은 것 같다.



극한 여행 3위. 에어컨 없이 미저리주까지


극한 여행 3위는 1박 2일 여정으로 떠난 일리노이와 미저리 주 여행이었다. 미저리 주의 한니발 Hannibal 이란 도시는 '톰 소여의 모험'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도시로 해마다 톰 소여의 모험과 마크 트웨인을 주제로 하는 지역 축제가 열린다. 작년 초여름 남편과 나는 이 축제 구경을 하고 다음 날은 일리노이 주의 스프링필드를 관광하는 계획을 세웠다. 여행을 떠나기 직전, 날씨가 매우 더워져서 에어컨을 슬슬 틀어야 할 때가 되어 틀었는데 에어컨이 안 나오는 것이었다. 카센터에 예약을 하고 냉매제를 충전하는 것으로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다음 날 에어컨을 틀려고 보니, 다시 이 냉매제가 다 빠져나간 것이다. 차를 유심히 살펴보니 봄에 수리받은 A 카센터에서 실수로 차 내부를 찍었는데 이 작은 틈 사이로 냉매제가 다 빠져갔던 것이고, B 카센터는 아무런 확인도 안 하고 냉매제를 채우기만 하고 우리를 돌려보낸 것이다. B 카센터에 다시 방문하니 수리 비용 $500과 다시 냉매제를 채우는 비용을 요구했다. 남편은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도 '쉬이익' 소리가 나서 다 알 수 있는 것을 간과한 B 카센터도 신뢰하지 못했다. 본인이 직접 수리를 하겠다고 한 남편은 필요한 부품을 구입해야 하니 며칠 걸릴 것이라고 했다. 여행은 당장 내일 떠나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다. 물론 다른 날 가면 되기는 하지만 한니발에서 열리는 축제는 그 주뿐이었다.



우리는 냉방 안 되는 차를 가지고 결국 먼 길을 떠났다. 일단 출발할 때는 새벽에 출발해 최대한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일정을 짰다. 너무 더울 때는 도로에서도 창문을 조금씩 열어놓고 달려 차 안은 매우 시끄러웠다. 햇볕 가리개를 챙겨가 5분 주차할 때라도 반드시 햇볕 가리개를 쳤다. 이마저도 없었다면 화상이라도 입을 수 있을 만큼 시트는 달아올랐다. 그럼에도 허벅지에는 땀이 맺혔고, 시원한 곳에서 쉬고 싶을 때는 박물관 로비에 앉아 에어컨 바람을 쐬었다. 돌아올 때는 밤에 고속도로를 타면서 비교적 순탄하게 돌아왔다. 


차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하자면 여행 후, 남편이 직접 수리를 했고 지금까지 냉매제가 전혀 새지 않고 아주 에어컨이 잘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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