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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부/원서로 하는 영어공부

[영어 원서 읽기] 암흑의 핵심 (Heart Of Darkness)-조셉 콘라드(Joseph Conr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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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rt Of Darkness 한국에는 암흑의 핵심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있다. 참 마음에 안든다. 암흑의 핵심? 무슨 뜻인지 곰곰히 생각해보다 원제를 보고 그 의미를 깨달았다. 너무 한자어 중심의 번역이 아닌가 싶다.


작가인 Joseph Conrad는 영국문학에 있어서 20C 변화의 계기를 구체적으로 만든 작가이다. 사실 인간의 내면을 다루는 것, 1인칭 전지적 시점이 아니라는 것, 인물이 소설속에서 성장한다는 것, 소설이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격자소설의 형식 등 은 현재 우리로써는 그다지 획기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분명한 변화였을 것이다. 노벨상 수상은 괜히 한 것 이 아니다.

 

작가는 자신이 글을 쓰는 그 목적을 분명히 하고 있다. '나의 임무는...여러분들을 듣고 느끼고 무엇보다도 보게 만드는 글을 쓰는 힘에 의한 것이다'(The Nigger of the Narcissus의 Preface에서... 번역은 제가;)

그렇다면 작가는 이 소설에서 독자에게 무엇을 듣고 느끼고 보게 하고 싶었던 것일까?


 

주인공 Marlow는 Kurtz라는 영국인을 구출하려고 Congo로 간다. 당시 영국은 콩고를 개발하고 있었다. Kurtz라는 인물을 찾아 콩고강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다. 독자는 콩고강을 따라가면서 점점 깊숙해지는 암흑의 핵심으로 접근해 가는 것이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콩고>

 

 

Two woman

Marlow가 콩고에 가기 위해 회사를 찾았을 때 만난 두 여자. Marlow는 이 여자들을 암흑세계로 인도하는 문지처럼 생각한다.

 

 

Brick maker

1년 차. 원래의 임무는 벽돌을 만드는 것. 하지만 벽돌은 안 만들고 Kurts에 대한 음모를 꾸민다.

 

 

Fresleven

Marlow의 전임자이다. 2년 동안 콩고에 머물렀던 그는 단순히 닭 2마리 때문에 원주민 추장을 도끼로 죽였다.  결국 그는 추장의 아들의 복수로 죽게 된다. 그는 이성적인 사고가 불가했었고 정복을 하러간 서구인이 거꾸로 정복을 당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Chief account

3년차. 아프리카에 맞지 않는 과도한 꾸밈은 그가 아프리카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음과 착취의 목표가 사치와 부를 위한 것임을 보여준다. 그는 흑인의 시체가 15피트(16m)나 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업무인 숫자에만 집착을 하고 있다. 인간을 폐기처분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그 잔인성과 함께 현실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 결핍되었음을 볼 수 있다.

 

 

General manager

9년차. 그는 이 곳에서 죽지 않고 살기만 해도 성공이라고 한다. 그가 콩고에서 하는 행동은 버티기일 뿐이다. 권력에 대한 욕망을 자제하지 못하여 Kurtz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민다.

 

아프리카에서 만난 서양인은 대개가 비정상적인 인물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과연 아프리카가 정복 당하는 것인지 아니면 서양인이 아프리카에 의해 정복을 당하는 것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사실 소설 중간 중간 그 부분에 대해서 독자에게 생각하게 만드는 구절들이 많이 등장한다.

 

 

Marlow의 목적지인 가장 깊숙한 핵심에는 Kurtz가 있었다.

그는 서구세계에서는 유망한 엘리트였다.

약혼녀도 있었고 그의 신념을 따르는 party(당, 그룹)도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돌아가면 중요한 직책이 보장된 사람이었다.

 

그런 그는 아프리카에서 충격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원주민 여자를 애인으로 삼고 문명이 없는 땅에서 육체적, 본능적으로 타락되어 있었다.

 

Marlow가 구출하러 왔을 때 Kurtz는 고민에 휩싸인다. 허상에 매인 유럽으로 갈 것인가, 허상을 깨고 본능적으로 전락되는 아프리카에 남을 것인가.

 

Marlow는 이런 Kurtz를 remarkable man이라고 평가한다. 원주민처럼 전락해버린 Kurtz를 왜 높이 평가하는 것일까?

 


 

소설에는 두 개의 세계가 나온다. 유럽과 아프리카이다.

유럽은 허상의 세계그려진다. 외적인 규제(교육, 사상)가 존재한다. Kurtz는 유럽사회에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곳에서 엘리트가 되어 살고 인정받아왔다. 

아프리카는 허상이 깨지는 곳이다. 본능적으로 전락하며 육체적인 충족을 추구할 수 있는 곳이다.

 

Kurtz는 이 두 곳을 넘나드는 인물이다. 그는 인간의 양면성에 대한 심화된 이해가 가능하였고 실현하여 양쪽의 사회에서 모두 지도자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단순히 Kurtz가 이 두 사회 모두에서 인정을 받았다는 것 뿐만이 아니다. 그는 육체적으로는 타락하였지만 정신적으로는 자신의 타락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정신적으로는 타락하지 않았음보여준다. 그 외의 다른 인물들은 이미 정신적으로 타락하고 있었지만 Kurtz는 예외인 것이다.

 

Kurtz를 만난 후 Marlow는 유럽사회의 사람들의 삶을 위장이라고 느낀다. 외적인 규제가 있는 곳에서 본인의 이념을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아프리카와 같은 곳에서는 스스로가 저항하고 반성해야한다. 그는 독자에게 외적인 규제가 없어도 스스로를 자제할 수 있어야 한고 이야기 하고 있다.

 

 


또한 그는 제국주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연을 파괴하는 개발, 스스로가 정복당하는 서구인, 서구인에 대조되는 에너지 넘치는 흑인, 거대한 자연. 끝나지 않을 제국주의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품은 Marlow의 경험담을 들은 선원들이 배를 띄우지 않는 것으로 끝난다. 단순히 이 것은 액자 형식으로 시작된 이야기의 마무리가 아니다. 암흑의 핵심으로 인도하는 바다로 배를 띄우지 않는 선원들의 모습작가가 기대하는 독자들의 반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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