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부터 명절이 싫었다. 엄마가 외며느리였던 탓에 아빠와 나는 엄마의 동서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엄마가 부엌을 진두지휘하고 맛을 책임지는 총괄적이고 보람 있는 역할을 했다면, 아빠는 만두소 다지기 나는 전 부치기와 같은 단순 노동을 맡았다. 성인이었던 아빠는 그나마 어느 수준의 결과물을 내어 주었지만,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부치는 전은 한쪽은 까맣고 다른 한쪽은 허여 멀 건했으며, 동태전은 언제나 반쯤 찢어져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우리 집의 명절 모습은 많이 바뀌었다. 명절 당일에 네 식구가 모여 치킨이나 떡볶이를 해 먹고 다 같이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갔다. 정말 먹고 싶어서 만드는 음식이 아니면 만들 필요도 없었다. 스무 살이 넘으면서 이틀 내내 열나게 전 부치고, 송편 빚고 (또는 만두 빚고) 또 증조할머니, 큰할아버지, 고모할머니 등을 뵈러 동네를 순회하지 않아도 되니 어찌나 마음이 행복했던지 모른다.
하지만 미국에서 일가친척 한 명 없이 남편과 단 둘이 살다 보니 그 시간이 그리울 때가 있다. '네 얼굴에서 코가 어디 있나 찾아보자. 얼굴은 너무 큰데 코가 작아 한강에서 나룻배 찾기만큼 어렵구나.'라며 짓궂게 놀리던 삼촌들. 손이 커서 푸짐하게 음식을 만들어주시던 외할머니. 늦은 밤 귀가할 때나 짐이 너무 많은 날에는 꼭 마중을 나와주던 남동생. 이 모든 가족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미국에서의 큰 명절은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이다. 이 기간에는 학교도 방학을 하고, 명절 당일에는 웬만한 상점들도 다 문을 닫기 때문에 갈 고향이 없는 사람들, 만날 가족이 없는 사람들을 더욱더 쓸쓸함을 느끼게 만들어준다. 그렇다고 해서 '아~ 할머니가 만들어준 녹두전이 먹고 싶다', '아~ 엄마가 만들어준 꼬치전이 먹고 싶다'하며 신세한탄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명절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은 바로 함께 타지 생활을 하는 유학생 동지 가정들과 모여 식사를 하는 것이다. 각자 음식을 한 가지씩 만들어온다. 한 끼 분량만 만들면 되니 부담도 적고, 반찬 하나씩이지만 모이면 의외로 다양하고 풍성하게 맛볼 수 있다. 고립감이나 우울함도 날려버릴 수 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시간을 보내게 된다. 밤에는 한국 부모님들과 페이스톡하며 마무리되는 미국에서의 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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