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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댁 in 미국 시골/임신.출산.육아 in 미국

미국 출산이야기 1. 유도분만 실패 후, 제왕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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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주차에 유도분만을 하려고 했으나, 출산병원에 자리가 없어 빠꾸를 먹고 41주 1일차에 유도분만을 하게 되었다. 두둥! 병원에 갈 때까지만해도 몰랐지. 진통하다가 제왕절개 한 최악의 케이스가 나란 것을...


6:00 A.M.

출산 병원에 전화를 해서 오늘 유도분만 할 수 있냐고 물어봤다. 자리 있으니까 아침밥 가볍게 먹고 7시 반까지 오란다. 아기 낳으면 못먹을 것 같아서 남편보고 매운 라면 끓여달라고 하고 한그릇 먹고 갔다.


7:40 A.M.

병원에 발레파킹을 하고, 어마어마한 출산 짐을 들고 분만센터 Birthing Center로 갔다. 휠체어를 가져다 주겠다, 내 대신 짐을 끌어주겠다... 친절한 직원들 도움을 받아 체크인까지 완료.


8:00 A.M.

병원투어 때 보았던 분만실에 들어가 간호사를 만났다. 간호사가 이것저것 확인도 하고 기본적인 설명을 해주는 오리엔테이션 시간을 가졌다. 그 와중에 레지던트와 당직 의사, 나의 주치의가 방문했다.



9:00 A.M.

9시부터 옥시토신을 투여했다. 간호사는 30분마다 한 번씩 들어와서 진통빈도/아기심장박동수/내 혈압을 체크했다. 그리고 1시간에 한번씩 레지던트가 와서 내진을 했다. 오전 내내 진통을 했지만 별 진전은 없었다. 자궁문은 여전히 3 cm. 무통주사를 바로 맞고 싶었는데, 무통주사 맞으면 걷지를 못해 불편하니까 통증이 약할 때 걷기도 하고 움직여보라고 해서 일단 진통제 없이 시작했다.



중간중간 간식도 먹고 점심도 먹었다. 먹을 수 있는 건 팝씨클, 젤로, 쥬스 정도. 하드바를 쪽쪽 빨면서... 산모가 아이스크림이라니 한국 부모님들이 보시면 기절촉풍할 일이고만 생각했다. 그래도 기분전환이 되어서 남편에게 계속 팝씨클 갔다달라고 요청해서 먹었다.



분만실 층에 부엌이 있어서 간단히 분만 중인 산모가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있었다. 우유, 젤리, 쥬스. 아이스크림, 팝시클 정도.


2 P.M.

옥시토신 투여량이 늘면서 진통이 심해졌고, 정맥주사 IV 로 맞는 진통제를 투여했다. 어지럽다는 부작용이 있었다.


4 P.M.

7시간을 진통했지만 별 진전이 없었고, 레지던트가 양수를 터뜨리자고 했다. 중국식 나무젓가락 같이 생긴 기다란 막대기를 들고 와서 양수를 터뜨리고 갔다.


4:30 P.M.

진통이 심해져서 이제 무통주사 좀 맞아야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간호사가 일단 욕조에 따뜻한 물 받아서 들어가 한번 통증을 완화시켜보잔다. 양수 터뜨려서 몸이 찝찝하기도 해서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간호사가 욕조에 물받아주고 옷 벗고 들어가는 것까지 모두 도와주었다. 나중에 끝나고도 모두 마무리를 해주어서 참 고맙고 편했다. 



따뜻한 물에 몸 담그고, 팝시클 먹으면서 그렇게 진통을 견뎠다.


5:00 P.M

목욕하고 나오니 이제 더이상 참을 길이 없었다. 바로 무통주사를 맞았다. 이 때부터 아기 심장박동수가 몇 번 급격하게 떨어졌다 돌아왔다 했다.


7:00 P.M

아기 심장박동수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레지던트, 시니어 레지던트, 당직 의사 등 온 의료진이 뛰어들어서 내게 산소마스크를 씌우고 정신없이 웅성웅성 우왕자왕 했다. 당직 의사가 아기가 죽을 수도 있으니 지금 당장 수술해야할 것 같단다. 몇 분간의 시간을 줄테니 결정하라고 했다.


나는 수술한다고 결정 안했는데 마취과 의사가 들어와서 수술시 어떻게 마취를 진행할 건지 말하기 시작했다. 혼미한 내게 알수 없는 마취제 종류를 설명해주는데 인도식 억양이 너무 강해서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오직 알아들은 건 "수면 마취를 해줄 수 없다"는 것 뿐. 수면 마취 해주면 안되냐고 하니까 절대 안된단다. 내 정신이 말짱해서 자기랑 커뮤니케이션 하면서 수술을 해야한단다.


7:30 P.M.

그 사이 다시 당직 의사가 들어와서 결정했냐고 물어봤다. 내가 1시간만 더 기다려보면 안될까 하니까 그건 절대 안되고 아기 죽을 수 있으니까 당장 수술해야한단다. 그럼 도대체 뭘 결정하라고 한거지? 영어식 표현으로 결정해라.. 한거지 실제로 내가 정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알겠다고 너가 시키는대로 한다고 했다.


상황이 긴급하다보니 내 몸뚱아리에 모든 의료진이 달려들었다. 등에는 마취과 의사가 마취제를 연결하고, 간호사 한명은 옷을 벗겨 물수건으로 몸을 닦고, 다른 간호사는 수술부위에 제모를 하고, 그 와중에 레지던트는 혹시 모르니까 한 번 더 내진해보겠다고 내진을 했다. 순식간에 많은 일이 일어나서인지 그 순간 자꾸 눈물이 났다. 옆에서 간호사가 "그래, 지금 너한테 너무나도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어. 알고 있어."라며 위로를 해주었다.


8:00 P.M

그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수술실에 들어갔다. 수면마취를 하지 않았는데 분만실에서 나갈 때, 거의 의식을 잃었다. 이 때, 남편은 카메라를 챙기고, 병원에서 준비한 수술복을 입고 밖에서 대기했다고 했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 속이 너무 울렁거려서 깨었다. 내 얼굴 위로 파란 천이 가려져있어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았다. 마취과 의사는 수술 내내 내 머리 맡에서 나를 지키고 있었다. 내가 너무 울렁거려서 토할 것 같다, 손이 너무 떨린다 등 이상 증세를 이야기하면 내 증상에 따라 마취약을 바로바로 조절해주었다. 사실 전체 수술 시간 중 거의 잠이 들어 있었고, 아기가 태어나기 앞뒤 10여분 정도만 깨어있었다. 의사는 수면 마취를 하지 않았는데 내가 잠들었다고 남편에게 설명해주는 소리를 잠결에 들었다.


8:45 P.M.



갈비뼈 아래 복부를 강하게 누르는 느낌이 나서 '억' 소리를 한 번 냈고, 그리고 아기 울음소리를 들었다. 거의 눈을 뜨지도 못하고 마취약으로 손을 벌벌 떨며 혼미하게 있으니 간호사와 남편이 와서 아기를 보여주었다. 간호사가 "네 아기야~" 하는데 그냥 내 몸이 죽을 것 같으니까 눈도 제대로 뜰 수도 없고 애 얼굴은 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아기가 무사하다는 것을 알아서 안도감이 들었는지 다시 바로 잠이 들었다.


9:30 P.M.



수술 봉합이 끝나고 회복실 Recovery Room으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남편은 내 대신 캥거루케어 Skin-to-skin을 했다고 한다. 계속 잠들어 있었는데, 아기가 너무나도 시끄럽게 우는 통에 잠에서 깼다. 간호사들이 일어났냐고 나를 반갑게 맞이하더니, 애기가 배가 고파서 30분 동안 울고 있다고 초유를 먹여야한다고 재촉했다. 나 너무 몸이 떨리고 힘들어서 아기를 안을 수 없다고 하니까 괜찮다고 나는 가만히 있고 자기들이 아기 잡고 있을테니까 빨리 초유를 먹이자고 보챘다. 그렇게 비몽사몽 초유를 먹였다. 나는 그리고 다시 잠이 들었다.



초유를 먹이고 아기가 좀 진정되자 서류에 필요한 발도장을 찍었다고 한다. 이 때, 베이비 북 같은 거 있으면 들고와서 개인 소장용으로 찍어도 된다고 해서 한국 부모님들께 보낼 용으로 몇 장 더 찍어두었다. 그리고 병실이 준비될 때까지 회복실에서 조금 더 기다렸다.


병실로 이동할 때가 되자 간호사들이 다시 잠든 나를 불렀다. 병실로 이동하는 동안 내가 아기를 안고가야 한단다. 나 지금 아기를 들 힘이 없어서 아기 떨어뜨리면 어떡하냐고 못한다고 했다. 그러자 자기들이 애기 안떨어지게 다 배게로 받혀줄꺼고 나는 그냥 팔로 잡고 있기만 하면 된단다. 



아기를 받는 순간 나는 곯아떨어졌고, 아기도 잠들었다. 간호사 둘은 내 침대를 끌고, 남편은 우리 짐을 카트에 실어 끌고, 잠든 나는 아기를 옆에 끼고 병실로 이동했다.


11:30 P.M.

남편은 너무 피곤한데 병실이 빨리 준비가 안되서 힘들었다고 한다. 오래 기다린 끝에 드디어 병실에 들어갔다. 나는 병실 침대로 옮겨지고 아기는 아기 크립에 놓였다. 남편은 가지고 간 여러 짐을 정리하고 바로 잠이 들었다고 한다. 밤새 중간중간 간호사들이 들어왔다고 하는데 너무 피곤해서 기억이 전혀 안난단다.


그렇게 고단한 세식구의 하루가 끝났다. 



유도분만부터 출산까지 모습을 브이로그로 보고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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